단풍이 절정으로 물든 어느 가을날, 처음으로 북한산에 올라 바위를 타고 수풀을 헤치며 꼭대기를 정복했다. 내려가는 길목에선 조그만 식당에 들러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그리곤 술과 안주를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의 아지트로 몰려 가 또 부어라 마셔라. 결국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노곤노곤한 방바닥 열기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말았던 것 같다. 그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일어났는데, 화장실 변기통을 부여잡으며 토사물을 뱉어내면서도 난 생각했다. "그래, 어제는 그럭저럭 멋진 하루였어."
멋진 하루에 대한 단상은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우리 생애에서 멋진 하루를 접하기란 안타깝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힘들고 외로운데다 메마르기까지 한 삶을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낸다. 내 심신의 안위와 가정의 살림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 늘 이리저리 재보고 따지면서 말이다. 자칫 잘못하다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사행동일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로또처럼 찾아오는 멋진 하루는 둘째 치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기도 가당찮은 삶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멋진 하루」는 이러한 우리의 고달픈 현실 속에서 조근조근 멋진 하루를 빚어낸다. 그것도 "(사촌이 병운은 철이 덜 들었다며) 사람 뼈 빠지게 일할 때 편하게 물려받은 사업하고 그러다가 조 씨 집안 재산 다 날려 먹고 마누라까지 도망"간 형편에 설상가상으로 전세금도 빼먹은 채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 중인 병운(하정우)을 통해서 말이다.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처량하고 애틋한 인물인 병운이 멋진 하루를 주조해 낼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병운이 "(병운이 스키강사 시절의 제자를 우연히 만나 돈을 빌린 뒤) 없으면 있는 사람한테 빌리는 거고 생기면 갚고 내가 있으면 남도 좀 도와주고 그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고 말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 게 아닐까.
「멋진 하루」가 삶의 자세를 논하는 영화라고 조금은 섣부르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병운은 기실 세상물정 모르고 헤헤헤 웃기만 잘하는 "헐렁한 녀석"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걸 잃었지만, 그래도 남은 게 있다면 "사람사는 맛" 운운하는 한량 같은 세계관이다. 병운의 그 세계관은 남들이 보기엔 순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신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가까스로 지탱해주는 밑절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세계관 덕에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병운의 초등학교 짝궁이 빌린 돈을 대신 주며) 병운이 힘들 때는 제가 꼭 도와줘야 되요. 뭐 저 어려울 때 걔가 많이 도와줬구요. 받으셔도 되요. 근데 걔 진짜 엉뚱해요. 아니 자기가 나보다 더 어려우면서 막무가내였어요"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잃어버릴까봐 휴대폰 분실을 걱정하고, 내비게이션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를 못미더워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엉뚱하고 막무가내여도 이해해 줄 만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병운은 0과 1의 이해타산으로 인간관계가 처리되는 매섭고 차갑기만 한 디지털 시대에 홀로 “사람사는 맛”을 음미하며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은 세상을 거슬러 살고 있는 병운의 세계를 더욱 또렷이 들춰낸다. 예컨대 사적인 관계로 절대로 돈을 빌려 주는 법이 없는 한 대표는 피 한 방울 안 나올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병운에게 만큼은 기꺼이 손을 내주며 골프를 배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새미 역시 “(빌린 돈을 받으러 온 희수를 보며) 좋아서 줬으면 닦달하지 말아야지. 나 같으면 그깟 돈 그냥 줘버리겠다.”고 말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수지타산을 맞추고야마는 세계를 에둘러 타박한다.
병운과 대척점에 선 이는, 기억 속 소멸시효가 지나가는 채무관계를 매듭짓기 위해 불현듯 옛 애인 병운을 찾아 나선 희수(전도연)다. 희수는 사업이 실패해 빚더미에 짓눌리게 된 병운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앞날이 창창한 펀드매니저를 따라 나선 매정한 인물이다. 부하 직원이 공금을 횡령한 여파로 펀드매니저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희수는 결혼에 골인해 그깟 푼돈으로 병운을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즉 희수는 실리와 계산이라는 알량한 무기로 온기 없는 이 세상을 어렵싸리 버텨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그 거울은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 줄곧 병운을 따라다니며, 우리가 머리가 굵어진 뒤로 세상살이에 치여 잊고 지냈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병운과 희수의 세상은 옅은 멜로의 옷을 입고 길항하며 만난다. 이별의 지점에서 그 충돌은 극대화된다. 병운은 사업 실패로 “사랑이 어려워”져 희수와 옛 아내를 자신이 떠나보낸 거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니가 싫어진 거 아냐. 그냥 이런 관계가 좀 버거워진 거 같아서. 그 사람 편해. 나한테도 잘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희수가 우연히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언뜻 죄책감을 내비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희수는 숟가락을 빨게 될 게 뻔한 병운을 애완견 유기하듯 은근슬쩍 내다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내야 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병운은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서 이렇게 당하기만 한다. 그러고도 세상 걱정 없는 한량처럼 “변한 거 하나도 없지? 서른 넘었다는 거 아무도 안 믿어.”라고 뺀질거린다. 희수가 “어쩜 그렇게 멀쩡하냐.”고 혀를 내둘러도, 사촌이 철이 없으니까 안 늙는다고 비아냥거려도 병운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운이 사촌의 말처럼 “저렇게 찌들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맘 편히 사는” 건 아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병운도 상처를 입는다. 다만 “산전수전 다 겪어서 웬만한 걸로 상처받지” 않고, “(상처를) 못 느낀다는 게 아니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는 거” 뿐이다. “니가 상처 같은 거 받아본 적” 있냐고 되묻는 희수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병운도 희수와 이별할 때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도 행복한 표정이라”, “그 얼굴이 떠올라서” 아팠다. “사람 사는 맛”이나 운운하며 철없는 짓만 골라하던 병운에게도 깊은 내상이 있었던 것이다.
병운의 내상은 꿈속에서 표도르와 나눈 대화를 희수에게 설명해주는 대목에서 더욱 곪아 들어간다. “생긴 거나 몸매는 꼭 착한 옆집 아저씨 같은데, 수줍은 표정으로 링 위에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가 경기가 딱 시작하니까 사람이 변하더라고. 링 위에서는 천하무적인데 링 밖에서는 왠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것 같은 슈퍼 히어로 같은 느낌? 언젠가 말이야. 내가 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거든. 근데 꿈에 저 사람이 나왔어. 한국말을 하더라고. 나한테 그랬다. 너 괜찮아? 너 많이 힘들지?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 가슴이 벅차 가지고 대답을 했어. 당신이 있어서 난 괜찮아. 그리곤 정말 한동안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괜찮은 거야.” 병운의 구구절절한 꿈속 얘기를 듣고 난 뒤, 곧이어 터지는 희수의 울음은 자연스럽다. 그런 병운을 매몰차게 내몰았던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수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병운의 제의를 거절하며, 병운을 향한 자신의 통절한 연민에 순순히 몸을 맡기진 않는다. 스페인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마드리드 한복판에 막걸리 집을 세우려는 철없는 꿈, 그러니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계가 현실의 엄혹함 속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수는 만 하루 동안 자신의 세계를 내비치며 ‘멋진 하루’를 선사한 병운을 차에서 내려준 뒤에야 비로소 옅은 미소만을 내보일 뿐이다. 하지만 희수의 냉장고엔 병운이 빌린 돈을 미처 갚지 못해 써준 차용증이 붙어 있다. 언제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는 듯, 또 다른 멋진 하루를 기약하려는 듯.
이제는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여느 사람들처럼 매사에 냉혈한 동물이 되고 말았지만, 조병운의 세계에 가닿을 수 있다면 진심으로 그곳에서 살고 싶다. 세상살이에 치여 조금은 기우뚱거릴지라도, 그래서 상처가 아물지 않아 꿈속에서 표도르를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계에서 단 하루라도 '멋진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죽고 싶다.
덧붙여 1
「멋진 하루」 감상평을 쓰기 위해 몇 년 만에 같은 영화를 다시 봤다. 아무리 괜찮은 영화라도 다시 보는 걸 죽어라 싫어하는데, 이 영화 감상평만큼은 꼭 남기고 싶었다. 그 정도로 좋았다고 할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은 장면이 없어서 두 주연 배우들이 내뱉은 대화를 거의 모조리 텍스트 파일로 옮겨 적었다. 그렇게 ‘부질없는’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차라리 대본을 구하면 될 걸 뭔 짓하나 싶기도 했다. 감상평 쓸 땐 더 가관이었다.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하는 결벽증이야 오늘 내일 일도 아니지만, 이번에 그 증세가 더 심했다. 감상평을 쓰는 내내 머리랑 손가락이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영화에 대한 예우는 갖춘 셈이다.
덧붙여 2
「멋진 하루」의 시나리오는 이윤기 감독이 썼지만, 원작은 다이라 아즈코라는 일본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언젠가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소설도 영화만큼 괜찮을 진 의문이지만.
덧붙여 3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조병운 (1965~2000)”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영화 속 병운을 닮은 조병운이 실제 존재했고 그래서 이 영화를 고인에게 바친다는 얘기인지, 영화 속 병운과 상관없이 그저 이윤기의 지인 고 조병운에게 이 영화를 헌사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전자라면 그런 친구를 둔 이윤기 감독이 참 부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