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꽃비

김꽃비는 연희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웃는다. 이름만큼이나 예쁜미소를 짓는다. 김꽃비는 분명 이색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배우다. 하지만 이색적인 필모그래피 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사한다. 연희의 당돌함과 소단의 발랄함은 김꽃비를 닮았다. 김꽃비는 그렇게 하나하나 자신을 펼쳐나가는 중이다. 대중적으로 너른 인지도를 얻진 못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깊게 각인된다. 한번에 멀리 뛰기보단 서서히 한걸음씩 발자국을 늘려나간다. <삼거리극장>과 <똥파리>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분명 김꽃비라는 이름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는 자신을 각인시킬 작품 수를 한편씩 늘려나갈 것이다.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원숙하게 무르익을 것이다.     

무비스트, 090424 민용준 기자


정말 그렇다. 김꽃비는 "어느 누군가에게 깊게 각인된다." 난 <똥파리>를 보고 김꽃비를 처음 알게 됐지만, 결코 <똥파리>의 센 힘 때문에 김꽃비를 머리에 새긴 건 아니다. 연희라는 극중 인물과는 상관없이, 처연함이 담긴 김꽃비의 무표정한 얼굴이 내 가슴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 들어왔다. 게다가 김꽃비는 요즘 유행하는 하트형 얼굴라인을 갖고 있다. 심지어 신민아보다 더 이쁘다.

아래는 똥파리 블로그에서 무단으로 퍼왔다. 홍보용 블로그니까 별 상관 없겠지. (위 사진도 연합뉴스 꺼-_-)


김꽃비
생년월일 : 1985년 11월 24일
키 : 158cm  체중 : 46kg  혈액형 : B형
취미 : 음악감상, 독서, 사진찍기, 영화보기
특기 : 재즈댄스, 발레
학력 : 상명대학교 연극학


영화
똥파리(2008) - 연희 역
약탈자들(2008) - 과수원 아가씨 역
삼거리극장(2006) - 소단 역,음악부문
짝패(2006) - 면도날 여고생 역
가족의 탄생(2006) - 분식집 단골학생 1 역
이슬 후(2006) - 주연
6월의일기(2005) - 어린 윤희 역
B형 남자친구(2005) - 고딩 2 역
여자,정혜(2005) - 어린 정혜 역
사랑니(2005) - 학원 여학생2 역
굳세어라 금순아(2002) - 원조교제 10대 소녀 역
질투는 나의 힘(2002) - 한미림 역


연극
아름다운 사인(2002)
까뽀니노(1997)


biography
초등학교 5 - 6학년 시절, 극단 활동을 한 김꽃비는 1997년 프랑스의 이마쥬 에귀(image aigue)극단과 함께 공연한 세계 연극제에 출연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교 진학 후 2년간 연극활동을 계속해왔던 그녀는 2003년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인 [질투는 나의 힘]에서 극중 이원상(박해일)이 질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자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잡지사 편집장인 한윤식(문성근)의 딸(한미림 역)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역을 맡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 문틈으로 이원상을 심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빛 연기와 표정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02년 청소년 연극제 연기상 수상

2009년 제46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 (축하합니다!!!)



<똥파리>에서 연희의 모습... 사진만 봐도 왠지 슬퍼진다.

by 디제이 | 2009/11/21 21:53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조병운의 세계에 살고 싶다 - 멋진 하루 (2008)


단풍이 절정으로 물든 어느 가을날, 처음으로 북한산에 올라 바위를 타고 수풀을 헤치며 꼭대기를 정복했다. 내려가는 길목에선 조그만 식당에 들러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그리곤 술과 안주를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의 아지트로 몰려 가 또 부어라 마셔라. 결국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노곤노곤한 방바닥 열기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말았던 것 같다. 그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일어났는데, 화장실 변기통을 부여잡으며 토사물을 뱉어내면서도 난 생각했다. "그래, 어제는 그럭저럭 멋진 하루였어."

멋진 하루에 대한 단상은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우리 생애에서 멋진 하루를 접하기란 안타깝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은 힘들고 외로운데다 메마르기까지 한 삶을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낸다. 내 심신의 안위와 가정의 살림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해 늘 이리저리 재보고 따지면서 말이다. 자칫 잘못하다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사행동일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로또처럼 찾아오는 멋진 하루는 둘째 치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기도 가당찮은 삶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멋진 하루」는 이러한 우리의 고달픈 현실 속에서 조근조근 멋진 하루를 빚어낸다. 그것도 "(사촌이 병운은 철이 덜 들었다며) 사람 뼈 빠지게 일할 때 편하게 물려받은 사업하고 그러다가 조 씨 집안 재산 다 날려 먹고 마누라까지 도망"간 형편에 설상가상으로 전세금도 빼먹은 채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 중인 병운(하정우)을 통해서 말이다.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처량하고 애틋한 인물인 병운이 멋진 하루를 주조해 낼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병운이 "(병운이 스키강사 시절의 제자를 우연히 만나 돈을 빌린 뒤) 없으면 있는 사람한테 빌리는 거고 생기면 갚고 내가 있으면 남도 좀 도와주고 그게 바로 사람 사는 맛"이라고 말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 게 아닐까.

「멋진 하루」가 삶의 자세를 논하는 영화라고 조금은 섣부르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병운은 기실 세상물정 모르고 헤헤헤 웃기만 잘하는 "헐렁한 녀석"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걸 잃었지만, 그래도 남은 게 있다면 "사람사는 맛" 운운하는 한량 같은 세계관이다. 병운의 그 세계관은 남들이 보기엔 순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신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가까스로 지탱해주는 밑절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세계관 덕에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병운의 초등학교 짝궁이 빌린 돈을 대신 주며) 병운이 힘들 때는 제가 꼭 도와줘야 되요. 뭐 저 어려울 때 걔가 많이 도와줬구요. 받으셔도 되요. 근데 걔 진짜 엉뚱해요. 아니 자기가 나보다 더 어려우면서 막무가내였어요"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잃어버릴까봐 휴대폰 분실을 걱정하고, 내비게이션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를 못미더워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엉뚱하고 막무가내여도 이해해 줄 만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병운은 0과 1의 이해타산으로 인간관계가 처리되는 매섭고 차갑기만 한 디지털 시대에 홀로 “사람사는 맛”을 음미하며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은 세상을 거슬러 살고 있는 병운의 세계를 더욱 또렷이 들춰낸다. 예컨대 사적인 관계로 절대로 돈을 빌려 주는 법이 없는 한 대표는 피 한 방울 안 나올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병운에게 만큼은 기꺼이 손을 내주며 골프를 배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새미 역시 “(빌린 돈을 받으러 온 희수를 보며) 좋아서 줬으면 닦달하지 말아야지. 나 같으면 그깟 돈 그냥 줘버리겠다.”고 말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수지타산을 맞추고야마는 세계를 에둘러 타박한다.


병운과 대척점에 선 이는, 기억 속 소멸시효가 지나가는 채무관계를 매듭짓기 위해 불현듯 옛 애인 병운을 찾아 나선 희수(전도연)다. 희수는 사업이 실패해 빚더미에 짓눌리게 된 병운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앞날이 창창한 펀드매니저를 따라 나선 매정한 인물이다. 부하 직원이 공금을 횡령한 여파로 펀드매니저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희수는 결혼에 골인해 그깟 푼돈으로 병운을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즉 희수는 실리와 계산이라는 알량한 무기로 온기 없는 이 세상을 어렵싸리 버텨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그 거울은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 줄곧 병운을 따라다니며, 우리가 머리가 굵어진 뒤로 세상살이에 치여 잊고 지냈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병운과 희수의 세상은 옅은 멜로의 옷을 입고 길항하며 만난다. 이별의 지점에서 그 충돌은 극대화된다. 병운은 사업 실패로 “사랑이 어려워”져 희수와 옛 아내를 자신이 떠나보낸 거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니가 싫어진 거 아냐. 그냥 이런 관계가 좀 버거워진 거 같아서. 그 사람 편해. 나한테도 잘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희수가 우연히 누군가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언뜻 죄책감을 내비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희수는 숟가락을 빨게 될 게 뻔한 병운을 애완견 유기하듯 은근슬쩍 내다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내야 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병운은 세상의 모진 풍파 속에서 이렇게 당하기만 한다. 그러고도 세상 걱정 없는 한량처럼 “변한 거 하나도 없지? 서른 넘었다는 거 아무도 안 믿어.”라고 뺀질거린다. 희수가 “어쩜 그렇게 멀쩡하냐.”고 혀를 내둘러도, 사촌이 철이 없으니까 안 늙는다고 비아냥거려도 병운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운이 사촌의 말처럼 “저렇게 찌들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맘 편히 사는” 건 아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병운도 상처를 입는다. 다만 “산전수전 다 겪어서 웬만한 걸로 상처받지” 않고, “(상처를) 못 느낀다는 게 아니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는 거” 뿐이다. “니가 상처 같은 거 받아본 적” 있냐고 되묻는 희수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병운도 희수와 이별할 때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도 행복한 표정이라”, “그 얼굴이 떠올라서” 아팠다. “사람 사는 맛”이나 운운하며 철없는 짓만 골라하던 병운에게도 깊은 내상이 있었던 것이다.


병운의 내상은 꿈속에서 표도르와 나눈 대화를 희수에게 설명해주는 대목에서 더욱 곪아 들어간다. “생긴 거나 몸매는 꼭 착한 옆집 아저씨 같은데, 수줍은 표정으로 링 위에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가 경기가 딱 시작하니까 사람이 변하더라고. 링 위에서는 천하무적인데 링 밖에서는 왠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것 같은 슈퍼 히어로 같은 느낌? 언젠가 말이야. 내가 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거든. 근데 꿈에 저 사람이 나왔어. 한국말을 하더라고. 나한테 그랬다. 너 괜찮아? 너 많이 힘들지?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 가슴이 벅차 가지고 대답을 했어. 당신이 있어서 난 괜찮아. 그리곤 정말 한동안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괜찮은 거야.” 병운의 구구절절한 꿈속 얘기를 듣고 난 뒤, 곧이어 터지는 희수의 울음은 자연스럽다. 그런 병운을 매몰차게 내몰았던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수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병운의 제의를 거절하며, 병운을 향한 자신의 통절한 연민에 순순히 몸을 맡기진 않는다. 스페인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마드리드 한복판에 막걸리 집을 세우려는 철없는 꿈, 그러니까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계가 현실의 엄혹함 속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수는 만 하루 동안 자신의 세계를 내비치며 ‘멋진 하루’를 선사한 병운을 차에서 내려준 뒤에야 비로소 옅은 미소만을 내보일 뿐이다. 하지만 희수의 냉장고엔 병운이 빌린 돈을 미처 갚지 못해 써준 차용증이 붙어 있다. 언제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는 듯, 또 다른 멋진 하루를 기약하려는 듯.


이제는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여느 사람들처럼 매사에 냉혈한 동물이 되고 말았지만, 조병운의 세계에 가닿을 수 있다면 진심으로 그곳에서 살고 싶다. 세상살이에 치여 조금은 기우뚱거릴지라도, 그래서 상처가 아물지 않아 꿈속에서 표도르를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계에서 단 하루라도 '멋진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죽고 싶다.



덧붙여 1
「멋진 하루」 감상평을 쓰기 위해 몇 년 만에 같은 영화를 다시 봤다. 아무리 괜찮은 영화라도 다시 보는 걸 죽어라 싫어하는데, 이 영화 감상평만큼은 꼭 남기고 싶었다. 그 정도로 좋았다고 할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은 장면이 없어서 두 주연 배우들이 내뱉은 대화를 거의 모조리 텍스트 파일로 옮겨 적었다. 그렇게 ‘부질없는’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차라리 대본을 구하면 될 걸 뭔 짓하나 싶기도 했다. 감상평 쓸 땐 더 가관이었다.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하는 결벽증이야 오늘 내일 일도 아니지만, 이번에 그 증세가 더 심했다. 감상평을 쓰는 내내 머리랑 손가락이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영화에 대한 예우는 갖춘 셈이다.


덧붙여 2
「멋진 하루」의 시나리오는 이윤기 감독이 썼지만, 원작은 다이라 아즈코라는 일본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언젠가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소설도 영화만큼 괜찮을 진 의문이지만.


덧붙여 3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조병운 (1965~2000)”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영화 속 병운을 닮은 조병운이 실제 존재했고 그래서 이 영화를 고인에게 바친다는 얘기인지, 영화 속 병운과 상관없이 그저 이윤기의 지인 고 조병운에게 이 영화를 헌사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전자라면 그런 친구를 둔 이윤기 감독이 참 부러울 것 같다.

by 디제이 | 2009/11/20 01:56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2)

글러브 각잡기


글러브 각잡기. 글러브 안에 공 두 개를 집어 넣고 끈으로 글러브 입구를 돌돌 말았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다.
어제 평범한 땅볼을 드럽게 놓쳤던 건 전적으로 요 싸구려 글러브 탓.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 우익수를 꿰찬 걸 보면, 내 실력은 여전히 우월하다.

by 디제이 | 2009/11/16 01:25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미수다 루저 발언, PD가 제일 문제

나도 루저.. 털썩..


미수다 루저 발언이 기어코 사건으로 비화됐다. 미수다에 게스트로 출연한 어느 키 큰 여대생이 180cm가 안 되는 남성을 루저라 칭했는데, 이를 꼬투리 잡아 (늘상 그렇듯) DC 갤러리를 필두로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여대생의 가치관과 취향을 함부로 폄훼할 순 없는 노릇이다. 키 작은 남성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니 누구든 상관할 바 아니란 소리다. 하지만 매스컴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일언지하에 키 작은 남자를 루저 취급한 건 심했다. 표현이 다소 거칠다 못해 못되기까지 하다. 말을 내뱉기에 앞서 루저라는 얘길 듣고 흠칫 놀랐을 나 같은 호빗족 시청자를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자 해당 여대생과 제작자간 책임 공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난 루저 발언을 여과없이 내보낸 PD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어디까지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표방하고 있으니 작가가 써준 대본을 게스트가 그대로 읽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PD 또한 이 점을 촬영 전에 게스트에게 상기시켜 줬을 게다. 하지만 어찌됐든 손에 들린 대본은 게스트에게 어떤 지침으로 작용했을 게 뻔하다. 그 대본이 게스트 의견을 밑절미 삼았더라도 이 사실은 변치 않는다. 게다가 TV에 처음 출연한 나이 어린 게스트에게 시청자에게 누가 되지 않는 예능감, 혹은 재밌고 솔직하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도 한 의사 표현을 요구하는 건 과도한 처사다. 다년간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PD의 시각으로 막나가는 원본을 적절하게 자르고 이어붙여 가다듬었어야 했는데, 미수다 PD는 마지막 게이트 키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채 게스트 의견을 바탕으로 대본을 작성했을 뿐이라고 꼬리나 감추려 하고 있다. 힘 없는 게스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아주 치사한 짓이다.

덧붙여 네티즌의 막무가내 행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새삼스레 짚고 넘어갈 껀덕지도 없지만, 요즘엔 마녀사냥이라는 입에 붙은 용어를 들어 네티즌의 일전을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냥 마음껏 헤집고 놀 수 있는 건수가 생기면 물 만난 고기마냥 한 놈만 잡아 패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마녀사냥이라기보단 일종의 놀이라 부르는 게 마땅할 성 싶다. 물론 개중엔 루저 발언에 정말 열이 뻗쳐 경건한 마음으로 마녀사냥을 자행한 호빗족도 있겠지만, 이들을 제외하곤 그 호빗족이 까발린 해당 여대생의 사생활을 놓고 '덩달아' 즐기고자 하는 네티즌이 대부분이다. 뭐 그게 마녀사냥 아니냐고 말하실 분도 있겠지만, 내 말의 요지는 응어리 진 마음에 해코지하는 네티즌보단 단순히 놀이에 참여하고자 전선에 나서는 생각없는 네티즌이 부쩍 많아졌다는 뜻이다.

시간이 약이겠거니 하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일이 커져 버렸다. 미수다 PD는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시청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물론 그 여대생 또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교훈을 배웠길 바란다.

by 디제이 | 2009/11/11 03:18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극장의 우상

잔병치레가 많아 한 주에 한 번 꼴로 병원 순회 공연을 벌인다(가늘고 길게 살 운명인가보다. 나중엔 똥칠도 하겠지). 허리를 부여잡고 신경외과에 갔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피부과에 들른 뒤 가글로 입안을 헹구며 치과에 가는 식이다. 병원에 가는 걸 끔찍히 싫어하지만, 그래도 먼저 맞는 매가 낫다는 생각에 몸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병마와 싸워 꼬인 매듭을 풀 작정이었다. 그런데 왠걸. 요즘엔 피부과에 행차할 때마다 꼬인 매듭이 풀리기는커녕 기분이 더러워져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다. 그러니까, 의사와 진지하게 마주보며 대화하기가 더럽게 어렵다는 얘기다.

머리에 이사 온 지루성 피부염과 몇 년동안 형 아우하며 사이좋게 지내다, 어느 순간 전두부 머리털이 왕창 빠진 걸 확인하고 뒤늦게 피부과를 찾게 됐다. 이러다 연애다운 연애도 못해 보고 40살까지 못해 본 대머리 남자 처지가 되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또 그런 걱정 덕분에 머릿 속을 쥐어짜내 진료에 도움이 될 만한 내 병력을 하나하나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이를 조목조목 아뢴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북한 머리를 한 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칠 수 있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 기대는 갈기갈기 찢겼다. 난 몇 마디도 못하고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대략 1분 30초만에 진료실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내 머리를 한두 번 이리저리 살피더니 금새 지루성 피부염을 확진하고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의 용법, 효능을 게 눈 감추는 찰나동안 알려준 뒤 썩 물러나지 못하냐고 날 타박했다. 아니, 꼭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진 않았지만 다음 환자를 진료하는 게 더 급한 모양임에는 틀림없었다. 단언하건대 다음 환자 역시 응급실행이 아닌 한, 나 같이 개똥 취급을 당하며 다다음 환자에 의해 냉큼 물러나갔을 것이다.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지루성 피부염이 호전되는 기색도 없고 무엇보다 의사한테 개똥 취급받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 결단을 내렸다. 바로 형 피부에 돋아난 곰팡이를 말끔히 치료한 의사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은 것. 서울 근교에 있는 병원이라 발품을 꽤 팔아야 했지만 머리털이 사라져 파마를 한 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이혁재를 잠시 상상하니 뭐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


형한테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던 이 의사는 여느 놈팽이들과 좀 다를까. 정말 달랐다! 먼저 환자 얘기에 귀기울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의사를 앞에 놓고 내 병력을 꼬치꼬치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감개가 무량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 앞이 뿌예질뻔 했다. 그 후엔 현미경으로 직접 머리 속을 관찰한 뒤 정상적인 머리 속과 비교해가며 모니터 화면으로 내 병의 상태를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처방할 약에 대한 설명이 차근차근 이어졌고, 마지막엔 사막처럼 황량해진 머리도 금방 자랄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위로의 말까지 건넸다. 마음 속으로 눈물이 핑 도는데 그 순간엔 정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들을 찍소리 못하고 꺼지게 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의사의 권위 탓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겨우 흰 가운을 입었을 의학도들의 실력을 우리는 좀체 의심하지 않는다. 의학도들 중에서도 분명 지진아가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환자한테 냉랭한 데에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넌지시 얘기해준다. 불친절하고 야박한 성정을 지닌 의사도 없진 않을 텐데 말이다. 의사의 권위는 그렇게 우리의 상상 속에서 한꺼풀 포장된 채 제 마음껏 환자를 대할 수 있는 우대권을 의사에게 부여한다. 우리는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하지만 의사 역시 사자 돌림의 전문직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디까지나 서비스 직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식당 캠페인의 문구처럼 고객이 정말 왕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이건 상식적으로 천박한 표어다), 접대받을 위치에 놓여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고객이 의사에게 돈을 쥐어주고 물질적, 정신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친히 행차한 것일 테니까. 따라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느 때나 민원을 올릴 수 있고, 그래도 그 민원이 수리되지 않으면 다른 병원을 찾아 가면 된다. 의사의 권위에 눌려 합죽이가 돼 그래도 잘 하겠거니 끙끙 앓고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잠깐 짚고 넘어갔던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러고보면 극장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다. 특히 인격과 성품은 아랑곳않고 간판과 명함만으로 사회적 높낮이를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씁쓸한 일이다.

by 디제이 | 2009/11/11 02:44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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