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상식 시험을 치르고 너무 화가 났다. 5개월 전부터 한겨레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문제가 너무 터무니 없었던 것.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첫 관문을 통과하긴 했다. 어떻게 통과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아마도 운이 더러 작용했겠지. 찝찝한 마음에 언론고시 카페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려고 글을 썼는데,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고 합격하지 못한 자의 변명으로 들릴 소지도 있어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채 여러 번 고쳐쓰기 했다. 그렇게 생산된 게 바로 이 글.
시즌이 한창입니다. 여기저기서 희비가 엇갈리고, 웃음과 울음이 교차합니다. 1차 필기시험에서 탈락하신 분들은 호기롭게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할 테고, 최종 면접에서 미끄러진 분들도 호흡 한 번 가다듬고 또 다시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할 테죠.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똑같이 이 바닥을 전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과 깊은 동지애를 느끼며 진심으로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뭐, 그 전에 저부터 됐으면 하는 바람이 더 강하긴 합니다만.
저는 2년간 기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기자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열심히 공부한 축에 들진 않을 듯합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2년 동안 필기시험을 통과한 적도 몇 번 없습니다. 설렁설렁 공부하다 최종까지 가는 분들 보면 이 바닥도 코드가 맞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가끔 있지만 어쨌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시험에 붙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올 초부터 바짝 공부하기 시작해서 겨우 필기시험에 통과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필기시험 중 ‘상식’이란 놈이 있습니다. 이놈은 진짜 진상입니다. 아무리 상식 책이 노랗게 닳도록 외우고 또 외워도, 하루 세끼 밥 먹듯 차곡차곡 신문 스크랩을 해도, 하루마다 업데이트 되는 운명을 타고 난 탓에 우리 머릿속에 자꾸만 부하를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아닌 이상, 과거에 애지중지 외웠던 상식은 어느새 최신 시사 상식에 묻혀 증발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돌고래 지능 갓 넘는 아이큐 지수를 지닌 저는 상식 공부할 때가 가장 괴롭고 짜증납니다.
그렇다고 언론사 전형 과정 중 상식 시험을 없애자고 떼를 쓰는 것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언론사에서 상식 시험을 보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성실함을 지니고 있는지, 두 번째는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 이 두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1차 필기시험의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일 테죠. 제 문제 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과연 지금 치르고 있는 상식 시험이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적절히 묻고 있는가. 저는 조심스레 그렇지 않다는 쪽에 표를 건네겠습니다.
인적성 검사가 아니고서야 어떤 시험이든 기본적으로 성실함을 묻는 문제를 포함합니다. 언론사 상식 시험으로 ‘키에르케골의 주관적 진리를 논하고, 그 진리가 왜 간접적으로밖에 전달될 수 없는지 답하라’는 철학 전공자 수준의 약술 문제가 나온다면 모두들 뜨악할 테지만, 다행히 ‘상대방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주장한 철학자는 누구인가?’라고 단답식으로 물으니, SPA를 웬만큼 공부한 우리는 손쉽게 답을 적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성실함을 묻기에 제격입니다.
하지만 빛의 속도를 묻거나(서울신문) 도가니가 도대체 소의 어떤 부위인지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는 경우(한겨레신문), 그러니까 응시자가 지극정성으로 성실해야 겨우겨우 문제를 맞힐 수 있을 땐, 그 상식 시험으로 응시자가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할 여지는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저는 성실함과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이 때때로 길항하며 다툴 수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여기서 의견이 분분할 거라 여겨집니다. 첫 번째, ‘상대방을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주장한 철학자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보다 ‘빛의 속도’를 묻는 문제가 더 쉬운 게 아닌가? 저는 단지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 더 어려웠기 때문에 성실함을 엄격히 묻는 문제라 가정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느끼는 난이도에 따라 둘은 바뀌어도 무방합니다. 두 번째,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에 성실함이 포함되는 게 아닌가? 분명 포함된다고 보지만, 제 논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작위적으로 구분하겠습니다.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에 성실함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부작용을 제시하라’(MBC)는 문제는 명백히 기자가 되려는 이라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성실함과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을 동시에 묻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빛의 속도’는 어떻습니까? 성실함과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 두 가지 모두를 묻는 문제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빛의 속도’를 묻는 문제가 성실함과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방점이 찍혀 출제됐는가? 기자가 꼭 ‘빛의 속도’를 알아야 합니까? 그저 성실함을 물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낸 문제일 테죠.
그래서 저는 다소 억지스럽게 ‘비정규직 보호법의 부작용을 제시하라’는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을 묻는 문제와, ‘빛의 속도’ 같이 성실함을 묻는 문제를 겨우 구분해냈습니다(물론 둘의 공통분모가 전혀 없다고 가정했습니다). 물론 이 둘을 가르는 기준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일 거라 봅니다.
그러니까 제 요지는 이렇습니다.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보다 성실함에 방점이 찍혀 출제된 필기시험은(즉 성실함을 묻는 상식 문제가 더 많은 경우) ‘기자’보다 시험 잘 치르는 범생이 혹은 재수 억세게 좋은 이(잘 찍어서 맞힌 사람)를 판별하는데 더 유리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혹자는 그런 시험을 통과한 범생이와 재수 억세게 좋은 이가 죄 기자가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먼저 범생이가 되고 재수 억세게 좋은 이가 돼야 비로소 기자가 될 수 있다면, 분명 석연찮은 구석은 남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빛의 속도’ 같이 성실함을 묻는 문제 대신, 성실함과 기자가 될 만한 기본적 소양 모두를 두루 물을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는 건 어떨는지요. 가령 ‘비정규직 보호법을 사용형태별로 논하고, 그 한계를 약술하라’는 상식은 어떻습니까? 논술 주제 같지만 평가자가 논리적 배치를 따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구체적 내용을 알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채점을 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라면 저는 순순히 토 달지 않고 범생이가 되겠습니다. 재수 억세게 좋은 이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언론사 상식 출제자 여러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종부세 개편안, 쌀 직불금 위법 수령, 북핵 위기 해소, 미 대선 등 요즘 최신 시사 상식이 수두룩 빽빽인데, 그래서 공부할 게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장차 기자가 될 어린이들이 감기는 눈꺼풀 치켜뜨며 정녕 ‘빛의 속도’를 외우게 놔두겠습니까? 채점할 때 좀 고생스럽겠지만, 제 바람을 톺아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 by | 2008/10/31 03:04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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