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규를 대신해


강병규가 결국 비타민에서 하차했다. 비타민 PD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그를 어쩔 수 없이 하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세살배기 아이도 그 이유 정도는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게다. 연예인 올림픽 응원단의 '외유'로 국고를 낭비했다는 네티즌들의 질타를 KBS도 더 이상 쉬쉬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국고 낭비 논란의 중심에 선 강병규를 선의로 봐주더라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듯 보인다.
아래는 국고 낭비 논란의 몇 가지 이슈와 그에 대한 강병규의 해명(조이뉴스 인터뷰 참고), 그리고 내 논평이다.


1. 귀빈대우 요구
연예인은 귀족이 아니다. 그리고 연예인이 아닌 대다수 사람들이 '평민'인 것도 아니다. 봉건시대가 아닌 이상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듯 보인다. 하지만 귀족은 아닐지라도 주위 시선을 항상 의식해야 하고, 더 나아가 이를 경계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난 논의를 위해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강병규를 포함해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에 참여한 연예인들을 이 사람들이라 전제하겠다. 물론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 줄로 안다. 연예인 응원단 중 일부(혹은 대부분)는 길거리에서 한 번 본 걸 두고 황송해야 할 '슈퍼스타'가 아니었고, TV에 그렇게 자주 얼굴을 내비치는 유명인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전제를 둬야 강병규의 책임이 한층 명백해 보일 것 같다.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을 스스로 특권계층화했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주위 시선에 신경써야 할 사람들(연예인 올림픽 응원단 등)과, 특권을 누리는 게 공적으로 허락된 국회의원 같은 이들을 다소 자의적으로 구분하겠다. 정치인은 적어도 그 '높으신' 자리 탓에 주위 시선에도 신경써야 하고 동시에 의전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테다. 그래서 이들은 일신상의 안전과 그 지위에 해당하는 품격을 위해 공적 자원을 무료로 제공받는 특혜를 누린다. 이는 국민들도 당연히 이해하는 바일 게다. 아무리 강병규가 연예인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퍼스트클래스의 비행기를 이용했고, 수준급의 호텔에 투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의 혈세나 마찬가지인 국고를 정치인도 아닌 이들이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혹은 주위 시선을 핑계로 함부로 사용할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 응원단 가족 동원
연예인들이 편하게 응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족과 동행하겠다고, 강병규 자신이 문화부 장관에게 직접 요구했다고 한다. '운영의 묘'를 살리는 차원이었다고 한 말이 웃기다. 공금을 어떻게 운영의 묘를 살려 사용하나. 관련 부처의 승인을 받아 계획에 맞게 사용해야 할 터다. 발 맛사지(스파가 아니라) 서비스를 받은 것도 강병규는 운영의 묘라 여겼던 모양이다. 난 이 부분에서 조심스레 강병규의 '무지'를 빌미로 그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자신들이 쓰고 있는 돈이 국민의 혈세라는 인식 외에 꼭 써야 할 곳에만 써야 하는 '귀중한' 돈이라는 윤리적 인식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2억이란 거금을 그런 식으로 계획성 없이 쓰진 않았을 게다. 혹자는 모르는 것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잘못이 알면서 저지르는 잘못보다 그나마 봐줄 만한지 않을까. 즉 난 이 대목에서 문화부에 그 책임을 상당 부분 묻고 싶은 것이다. 강병규가 혈세를 낭비하기 전에, 문화부는 왜 국고를 사용하는 일이 국정감사에서 질타받을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란 사실을 강병규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혹시 문화부조차 일개 연예인이 '운영의 묘'라 여겼던 수준의 윤리적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3. 사전준비 미비
다시 문화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강병규가 아니고 또 문화부인가. 강병규의 말처럼 "경기장 표를 구하지 못해 당초 목적인 응원전을 활발히 펼치지 못했고 심지어 고액을 주고 암표까지" 산 건 계획성 없이 일을 추진한 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베이징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계획성 없이 일을 추진하도록 그에게 돈만 쥐어준 문화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둘의 책임을 양팔저울로 측정했을 때, 상당 부분 문화부에 양팔저울이 기울 것이란 사실을 명백히 해두고 싶다. 세부항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여행경비계획에 어느 누가 '백지수표'를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허리띠 졸라매며 돈을 써도 욕 먹을 일만 남을 게 뻔하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에 문화부의 관리 아래 세부항목이 정해졌더라면 강병규가 섣불리 '운영의 묘'를 발휘해 가족과 동행한 채 퍼스트클래스의 비행기를 이용하고, 수준급의 호텔에 투숙하며 발 맛사지를 받는 등 '귀빈대우'를 받으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강병규가 짊어진 무거운 짐을 한껏 내려놓아도, 그는 연예인 올림픽 응원단의 대표자로서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감사에서 국고 낭비 논란이 벌어진 뒤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게 돌을 던지며 비타민 하차를 요구했고, 기어이 일은 벌어졌다. 내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비타민에서 하차하는 게 과연 책임의 무게에 합당한 유일한 속죄 의식이었을까.
난 앞선 논의에서 문화부의 잘못을 들어 그의 책임을 일정 부분 덜어주는 게 공평하다고 봤지만,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명백한 책임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도 않았다. 강병규를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결국 난 정도의 문제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는 상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적 의식이 다소간 결여된 어느 연예인이 한 순간의 잘못으로 '밥줄'을 놓아야 한다? 물론 정권의 고위공직자는 그럴 수 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의 임명에 따라 국민의 녹을 받아 먹으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행정을 성실히 도맡아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인 탓이다. 하지만 연예인이 아무리 공인이라고 해도 고위공직자에 버금가는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는 시청자들이 전파의 주인이고, 그러한 공공의 전파를 타는 게 연예인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적' 개인에게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얘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처사라 여겨진다. 안다. 기실 정도의 문제를 가르는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도의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역지사지'를 해보는 것도 이 사태를 이해하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 같다. 밥줄을 놓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다. 이 대목에서 그 동안 강병규는 돈 많이 벌어놓지 않았느냐, 뭐가 아쉬울 게 있냐고 반문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강병규의 '밥줄'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차압당하는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믿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얘기 안 한 게 있다. 바로 강병규의 '선의'다. 강병규가 그깟 베이징 '외유'를 위해 이런 일들을 저지르진 않았을 게다. 아무리 비타민 하차를 주장하는 쪽에 백보 양보하더라도, 강병규 쪽 대표로(물론 난 어느 쪽도 아니다) 무릎 꿇고 잘못을 사죄하는 일이 있더라도 강병규의 선의가 결코 퇴색되어선 안 된다. "가까운 나라에서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예년처럼 올림픽 분위기 없이 싸늘"했다는 연예인 올림픽 응원단의 본래 취지를 강병규가 다소 뭉뚱그려 얘기하긴 했지만, 올림픽 분위기를 북돋으려 했다는 그의 말은 전직 운동선수라는 그림자와 겹쳐지며 일단은 '선의'로 평가해 줄 부분임엔 틀림없다.

"강병규씨가 분명 잘한 것은 아니지만 잘해보자고 한 일인데... 앞으로 누가 이런 일을 주도해서 하겠나" 내 말이. 비타민 하차는 분명 과한 처사다.

by 그냥 | 2008/11/11 02:18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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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짝꿍 at 2008/11/12 10:49
강병규 오비베어스때 2,3선발 수준으로 꽤 잘던졌지. 완투승도 하고, 선수협때 완장차고 구단의 눈밖에 나서 팽당할때까지만해도 참 이미지 좋았는데.
하여간 대가리가 빈거야.
운동하는새끼들도 최소한 공부라는걸 시켜야지. 운동만하니깐 저지랄이야.
엘리트스포츠의 현실..ㅎㅎ
Commented by 그냥 at 2008/11/12 22:32
국고 낭비 때문에 하차한 게 아닐 수도 있대. 인터넷 도박하다 걸린 지상파 MC K는 누굴까.
Commented by 아무튼 at 2008/11/13 06:39
방송국측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자사아나를 쓰기 위해 잘랐다쟎아요. 명분상으론...사실 그렇다 해도 할말은 없어요. 경쟁에서 밀린거죠. 유재석이면 안잘렸죠. 자기 능력이죠. 게다가 연예인으로 명백한 잘못을 하고 뉘우치지 않았으니 이미지 안좋아지고 하차 요구를 하고 잘렸다 한들 자기 탓이라고 봅니다. 시청자들도 싫고 잘못된 사람 억지로 봐야할 의무가 없어요. 강병규 때문에 비타민이라는 건강 프로 보고 싶은데 안볼수 없쟎아요? 강병규가 뭐라고...
Commented by 그냥 at 2008/11/13 22:44
강병규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요. 저는 비타민을 하차할 정도로, 다시 말해 '밥줄'을 놓을 정도로 강병규가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즉 정도의 문제를 묻고 있는 것이죠. 위 글의 중심 논지에서 밝혔듯 문화부가 이 사태의 책임을 상당 부분 강병규와 나눠서 짊어졌더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테죠. 물론 국정감사 논란 이후 강병규의 도드라진 처신 때문에 불 난 집에 기름은 부은 격이 됐지만.
Commented by 그리고 at 2008/11/13 06:41
유재석이 안티가 없는건 연예인으로 이미지와 자기관리를 잘하기 때문이죠.
다 자기 탓인거예요.
Commented by 그냥 at 2008/11/13 22:53
모두 자기 탓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강병규는 죽일 놈일 거에요. 하지만 죄를 물어 처벌할 땐, 원인과 결과를 면밀히 따져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런 뒤에 비로소 그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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