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당 선언』, 강유원 (0609)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버리고 하나 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 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뿐이다.
- 단결투쟁가 -
새내기 시절, 멋모르고 선배 손에 이끌려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단결투쟁가를 불렀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무슨 생각으로 목청을 돋우며 ‘팔뚝질’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난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였던 것 같다. 세상의 진보는 얼어 죽을, 노동자와의 연대는 그저 흰 소리. 대학생들이 노동자 옆에서 ‘팔뚝질’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니 그냥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사실 도로를 점거하고 팔뚝질을 하는 게 젊은이의 치기 어린 생각엔 멋져 보인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머리가 조금 커진 뒤, 난 어느새 ‘팔뚝질’을 아직 철이 덜 든 사람이나 하는 행위로 치부하게 됐다.
하나 조직으로부터 한 달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란다. 요즘 세상에 어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부러 내 생각은 틀렸다. 아직 철이 덜 든 사람이나 ‘팔뚝질’을 하는 게 아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외엔 모두 팔뚝질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일,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신분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알아야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니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난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니 아무래도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가능성이 높을 게다. 다행히도 화이트칼라에 속할 테니 가슴을 쓸어내려도 되는 걸까? 어림도 없다. 블루칼라로 명명된 사람들이 작업복 입고 공장에서 스패너로 나사를 조이긴 하지만, 그래서 화이트칼라에 비해서 더 ‘저급’해 보이긴 하지만,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나 위로부터 한 달 ‘녹봉’을 타먹긴 마찬가지다. 다 같이 노동자란 얘기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즉 노동자와 구분되는 사람은 자본가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 쉽게 말해 공장의 대지와 자동화 기계, 컴퓨터와 각종 소모품을 제 돈 들이고 갖고 있는 사람 말이다. 우리는 이 자본가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자본가의 집기를 빌려 자본가의 일을 대행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말이다. 하나 자본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는 참혹하기만 하다. 노동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한계’ 생산성을 달성하면, 자본가는 더 세련되고 효율적인 기계를 들여놓거나 아예 값싼 노동력이 있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함으로써 노동자의 자리를 없애기 때문이다. 그 편이 한계 생산성을 달성한 노동자를 무리하게 쥐어짜는 것보다 자본가가 제 배를 불리기에 더 낫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말을 곱씹어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는 자본 축적을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시장을 개척한다. 다행히 아직 미개발된 시장의 사람들은 자본가로 인해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다. 자본가가 그간 배를 곪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돈을 쥐어주는 탓이다. 하지만 시장의 ‘레드오션’은 피할 수 없다. 노동자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첨단 기계를 들여오는 등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익을 높이려 해도 어느 순간 한계가 찾아오는 법이다. 그럴 때 자본가의 다음 행동은 불 보듯 뻔하다. 시장을 버리고 미 개척된 다른 시장을 찾아나서는 일. 다시 말해, 한계 생산성에 도달한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어져 배를 곪게 되는 처음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소리다.
이에 맞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할 텐데, 노동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혁명의 길은 가망 없어 보인다. 적어도 노동자의 봉기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풍경은 머릿속에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먼저 자본주의의 생리를 파악하고 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식하는 게 ‘단결’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단결의 공간은 헐겁지만, 이미 마련돼 있다고 본다. 진보신당 말이다. 진보신당에 한 표를 건네는 게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한 사람들의 민의를 모아 ‘단결’하는 길 아닐까.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만국의 소비자여, 단결하라! by 자그니
- 어쩌란 말이냐 by slow
- 강유원의 셰어웨어 by 아르
-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by 한도사
# by | 2008/11/15 00:50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